아우터 월드 2 후기, 씁쓸한 현실 풍자 속 피어나는 블랙 유머의 매력



아우터 월드 2 후기, 씁쓸한 현실 풍자 속 피어나는 블랙 유머의 매력


아우터 월드(The Outer Worlds)를 처음 플레이했을 때, 그 특유의 삐딱하고 폴아웃(Fallout)스러운 유머 감각에 단번에 빠져들었던 기억이 나는데요.

활기 넘치는 대사, 캐릭터들의 일기, 그리고 선전 포스터들이 어둡지만 동시에 유쾌한 기업 디스토피아의 그림을 완벽하게 그려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우터 월드 2(The Outer Worlds 2)를 시작하면서 가장 크게 우려했던 부분이 있었거든요.

전작이 출시된 2019년 10월과 지금의 세상은 너무나도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계란 한 판을 잔돈으로 살 수 있었고, 인간 직원들이 AI로 대량 대체되지도 않았으며, 몇 년에 걸친 팬데믹을 겪지도 않았는데요.

물론 그때도 세상이 완벽하진 않았지만, 지금보다는 덜 망가졌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전작의 디스토피아는 현실과 적당한 거리가 있었기에 마음껏 웃을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속편은 이런 분위기를 다시 한번 재현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제 예상은 틀렸는데요.

아우터 월드 2는 전작만큼이나 유쾌하면서도, 낡은 기업의 구호처럼 같은 내용을 재활용하는 대신 새로운 주제를 영리하게 녹여냈습니다.

교묘해진 기업의 통제, 그리고 '세뇌'

전작의 NPC 대부분은 스페이서스 초이스(Spacer's Choice) 같은 기업의 횡포에 짓눌려 자신들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 잘 알고 있었는데요.

아우터 월드 2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세뇌'당한 캐릭터들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많은 NPC들이 자신의 상황이 얼마나 엉망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하거든요.

부상을 당하고 과로사 직전까지 몰린 NPC들은 거대 기업이라는 기계에서 벗어난다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속편은 단순히 대중을 가난하게 유지하는 것보다 더 교묘한 형태의 기업 통제를 보여주는데요.

많은 NPC들이 마치 소셜 미디어에서 성공의 비결을 알려주겠다며 비싼 워크숍을 팔거나 수상한 암호화폐 투자를 권유하는 계정들처럼, 지나치게 열정적인 '자기 계발 마인드셋'에 세뇌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기업의 선전 방식도 진화했거든요.

여전히 벽에는 휴가를 생각만 해도 임금을 깎겠다는 식의 살벌한 포스터가 붙어있지만, 다단계 마케팅 전략을 암시하는 내용들도 추가되었습니다.

신입 사원 핸드북에 적힌 "'낯선 사람은 당신이 아직 만나지 못한 고객일 뿐입니다!'"라는 문구를 봤을 때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는데요.

마치 피라미드 조직의 하층부에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 하는 말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

아우터 월드 2는 우리가 일, 정치, 심지어 개인적인 구매에 이르기까지 마주하는 딜레마를 깊이 파고드는데요.

바로 둘(혹은 셋) 중 '차악'을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위험한 기업과 위험한 종교 집단 중 하나를 지지해야 하는 상황에서, 저는 제가 아는 악마의 편에 서는 자신을 발견했거든요.

끔찍한 세뇌 기술을 사용하는 종교 집단보다는, 적어도 선전물로만 사람들을 세뇌하는 익숙한 기업이 차라리 낫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심지어 당신이 소속된 조직조차 믿을 수 없는데요.

당신은 '지구 집행위원회(Earth Directorate)' 요원으로서 아케이디아(Arcadia) 식민지의 질서를 회복하는 임무를 맡게 되지만, 이 조직 역시 윤리적인 고용주와는 거리가 멉니다.

웃음 뒤에 숨겨진 날카로운 현실 풍자

아우터 월드 2의 많은 순간들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현실과 닮아있지만, 그것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주는데요.

게임은 우울한 디스토피아 설정과 진정으로 웃긴 유머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유지합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아우터 월드 2는 본질적으로 웃기지만 진지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거든요.

한번은 게임 속 세계를 헤매다가 시체 옆에 놓인 오디오 로그를 발견했습니다.

세뇌된 종교 집단 소속이었던 이 NPC는 자신의 연인이 조직을 배신하자 그를 추격하다가 사고로 죽은 것이었는데요.

그녀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남긴 메시지는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내 사랑... 미안해요. 하지만 당신이 여기 있었다면,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당신을 죽였을 거예요. 우리의 감정은... 소버린의 눈부신 사랑 앞에서는 촛불 하나에도 미치지 못하니까요.'"

이 순간은 결코 웃기지 않거든요.

하지만 한때는 사랑했던 가족이 특정 신념에 빠져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해버린 모습을 명절에 마주해 본 사람이라면, 이 순간이 얼마나 카타르시스를 주는지 공감할 것입니다.

결국 아우터 월드 2가 분명히 말해주는 한 가지가 있는데요.

웃음이야말로 최고의 명약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우주 의료 보험에 가입할 여유가 없을 때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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