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로우 나이트 실크송 스토리, 완벽에 가까웠지만 단 하나가 아쉬운 이유



할로우 나이트 실크송 스토리, 완벽에 가까웠지만 단 하나가 아쉬운 이유

'할로우 나이트 실크송(Hollow Knight: Silksong)'의 스토리는 전작의 서사 스타일을 그대로 이어가는데요.

역사와 캐릭터의 성장을 여기저기 숨겨두고, 이 조각들을 모두 맞추고 나면 처음엔 단순해 보였던 이야기가 얼마나 중요했는지 깨닫게 되는 방식입니다.

사실 실크송의 거의 모든 부분은 전작보다 더 뛰어나고 야심 찬데요.

강력한 중심 아이디어와 놀라운 반전까지 갖춘 스토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거의'라는 단서가 붙거든요.

바로 주인공이 '호넷'인지, 아니면 '플레이어' 자신인지 개발사 '팀 체리(Team Cherry)'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는 한 가지 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순례와 종교 비판, 그리고 단테

실크송은 호넷이 새장 속에 갇힌 채로 시작하는데요.

'팔룸(Pharloom)'의 신 '실크 대모'의 명을 받은 위버들에게 붙잡혔지만, 이내 탈출해 순례를 시작하는 미천한 존재들과 엮이게 됩니다.

호넷은 뼈와 시체가 쌓인 지옥 같은 심연에서 시작해, 부패한 종교 계급이 사는 '시타델(Citadel)'까지 점차 올라가거든요.

그 과정에서 그녀는 소위 '신앙'이라는 이름 아래 착취당하는 대중의 잔인함과 고통을 목격하게 됩니다.

실크송은 순례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이건 단순히 모두가 시타델로 향한다는 표면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중세 시대의 순례와 인간의 고결한 투쟁을 다룬 '도덕극'을 모델로 삼고, 여기에 종교 개혁 스타일의 조직 종교 비판을 가미했거든요.

지옥 같은 지하 세계를 거쳐, 나쁜 상황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는 중간층을 지나, 시타델로 올라가는 호넷의 여정은 단테의 '신곡(The Divine Comedy)'과 평행을 이룹니다.

르네상스 문학의 걸작인 이 작품은 단테라는 인물이 지옥, 연옥, 천국을 거치며 영적 변화와 깨달음을 얻는 순례를 다루는데, 이건 사실상 실크송의 핵심 줄거리와 같습니다.

자유 의지와 구원, 훌륭한 결말


이야기의 핵심은 실크 대모가 한때 옹호했던 종교와 삶의 방식이 변질되었다는 것인데요.

그녀의 자손들은 가르침을 버렸고, 사리사욕에 눈먼 사제 계급이 시타델을 장악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교리를 이용하게 된 것입니다.

실크 대모의 후손인 호넷은 좋든 싫든 '어머니'의 뜻을 따를 운명이었거든요.

하지만 그녀는 위버들의 드라마와는 상관없이 자신을 위해 살도록 길러졌고, 바로 이 때문에 실크 대모가 게임 초반에 호넷을 붙잡아 그녀의 운명적인 책임을 강요하려 한 것입니다.

만약 2장의 일반 엔딩에서 호넷이 실크 대모를 물리치면, 그녀는 신의 영혼을 흡수하고 새로운 신이 되는데요.

이것이 진엔딩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 시나리오에서는 팔룸의 문제가 계속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하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3장을 열면 진정한 결말에 도달하게 되거든요.

모든 순례가 그렇듯, 이 여정 역시 계시와 새로운 목적을 발견하며 끝이 납니다.

호넷은 이제 자신을 얽매던 위버의 피에서 벗어나, 실크 대모의 영향 없이 원하는 삶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주변 사람들을 돌보는 것만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플레이어에게 던지는 아주 뛰어난 메타 스토리텔링인 셈이죠.

하지만, 주인공은 누구인가?


실크송의 마지막 메시지는 훌륭하게 만들어졌지만, 팀 체리는 게임 내내 그 메시지를 뒷받침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데요.

더 중요하게는, 이 모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호넷'과 이 메시지를 연결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이 메시지는 우리 플레이어들을 위한 것일지 몰라도, 스토리는 분명 '호넷'에 관한 것이거든요.

플레이어와는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주인공이 있다면, 당연히 그 캐릭터가 이야기의 중심이 되어야 하고, 그녀의 행동과 성장을 통해 메시지가 전달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호넷은 이 여정에서 배우거나 변화하지 않거든요.

그저 집으로 돌아가려는 목적 외에는 다른 동기가 없습니다.

자유 의지와 운명 사이의 갈등은 2장의 보스전과 숨겨진 일부 설정에서만 겨우 드러날 뿐입니다.

마치 전작의 '기사(Knight)'가 플레이어가 채워 넣는 텅 빈 '껍데기'였던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호넷은 단 하나의 목적을 가진, 자기 주도적인 사냥꾼인데요.

만약 플레이어가 그녀가 평소라면 하지 않을 선택, 예를 들어 연약한 벌레들을 돕기 위해 일부러 길을 돌아가는 선택을 하게 한다면, 최소한 어떤 마찰 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그녀가 불평하거나, 무뚝뚝하게 굴거나,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보여야 하거든요.

하지만 호넷은 팔룸의 연약한 벌레들을 도와달라는 첫 요청에 무관심으로 반응하고, 플레이어가 그들을 돕는 선택을 하더라도 그들 중 누구와도 특별한 유대감을 형성하지 않습니다.

겉도는 주변 인물들


문제는 호넷의 캐릭터 서사 방식뿐만 아니라, 다른 캐릭터들이 이야기 속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도 비롯되는데요.

대부분의 주변 인물들은 그저 공간을 채우기 위한 장식처럼 느껴집니다.

예를 들어 '가몬드'는 배경에서는 멋져 보이지만 이야기에서 어떤 중요한 역할도 하지 않거든요.

'녹색 왕자'의 이야기는 비록 강렬하지만, 호넷의 이야기나 중심 메시지와 너무 동떨어져 있어서 이 부분을 들어내도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이처럼 실크송이 누구에게 더 집중할지 되는대로 결정하는 것처럼 보이는 방식은, 사이드 스토리를 미완성처럼 느끼게 하는데요.

거의 모든 경우에 호넷을 '수동적인 참여자'로 만든다는 것이 가장 큰 실책입니다.

그녀는 자기 이야기의 조수석에 앉아, 그저 모든 것을 따라갈 뿐입니다.

비록 실크송이 주제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지만, 저는 팀 체리가 여기서 보여준 시도를 여전히 존중하는데요.

이렇게나 많은 영감을 하나로 엮어, 게임 맵 자체에 녹아들 정도로 강력하고 다층적인 주제를 만들어낸 게임은 정말 드뭅니다.

만약 팀 체리의 다음 프로젝트가 전작들을 뛰어넘는 더 대단한 작품이라면, 부디 그 발전에는 스토리텔링의 '기본기' 역시 포함되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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