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묘비명 존 윅 헥스가 우리에게 남긴 것


한 게임의 조용한 퇴장


최근 한 게임이 디지털 스토어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이라는 공지가 발표되었습니다.

전략 게임 '존 윅 헥스(John Wick Hex)'가 라이선스 만료로 인해 2025년 7월 17일부터 모든 플랫폼에서 판매가 중단된다는 소식입니다.

표면적으로 이는 크게 놀랍지 않은 일입니다.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라이선스 게임이 계약 기간 종료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은 업계에서 드문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작은 사건은 우리가 살고 있는 디지털 시대의 근본적인 취약성과 소유권의 본질에 대한 훨씬 더 크고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한 편의 디지털 창작물이 이토록 쉽게 '공식적인' 접근 경로를 잃고 소멸될 수 있다면, 과연 우리가 구축하고 있는 디지털 문화는 영속할 수 있는 것일까요.

예견된 비즈니스, 합리성의 이면


'존 윅 헥스'의 판매 중단을 둘러싼 가장 지배적인 시각은 이것이 지극히 합리적인 경영 판단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이 게임은 '존 윅'이라는 강력한 IP를 기반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평가를 받으며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따라서 퍼블리셔 입장에서 추가적인 비용을 들여 라이선스를 갱신하기보다는, 계약 만료에 맞춰 판매를 중단하는 것이 재무적으로 가장 타당한 선택입니다.

이는 자본주의 시장 논리 안에서 완벽하게 이해 가능한 결정입니다.

과거 물리적 패키지 시대에도 비인기 게임들은 초판 인쇄 이후 추가 생산 없이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곤 했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판매 중단까지 1년이라는 유예 기간을 둠으로써, 원하는 사람은 미리 구매하여 영구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디지털 시대의 판매 중단은 과거보다 오히려 소비자에게 더 친절한 절차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사라지는 문화, 보존의 역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합리적인 비즈니스 논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우려가 제기됩니다.

게임의 상업적 성공 여부나 작품의 질과는 무관하게, 하나의 창작물이 합법적인 경로를 통해 완전히 접근 불가능하게 되는 현상 자체에 대한 비판입니다.

물리적 매체는 단종되더라도 중고 시장을 통해 유통되며 그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디지털 라이선스가 만료된 게임은 공식적으로는 그 존재 자체가 소멸하는 '디지털 소멸(Digital Delisting)'을 맞이합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해당 문화를 보존하는 유일한 방법이 '불법 복제(Piracy)'라는 역설적인 상황을 만들어냅니다.

물론 인터넷 아카이브와 같은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일부 데이터가 보존될 수는 있지만, 이는 합법적인 소유와는 거리가 먼 불안정한 대안일 뿐입니다.

결국 이 문제는 우리가 '소유'한다고 믿었던 디지털 콘텐츠가 사실은 언제든 회수될 수 있는 '접근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디지털 시대의 문화 보존이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서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라이선스, 소유, 그리고 디지털 선반의 환상


이 문제의 본질을 깊이 파고들면, 우리는 '라이선스 계약의 본질'과 '디지털 소유권에 대한 환상'이라는 두 가지 구조적 원인과 마주하게 됩니다.

첫째, 대부분의 미디어 라이선스 계약은 영구적인 권리를 부여하는 대신, 특정 기간 동안의 사용권을 허가하는 형태로 이루어집니다.

IP 소유자에게는 이것이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하고 자산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영구 라이선스는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그 비용은 대부분의 게임 개발사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거나, 아예 판매 제안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게임의 운명은 작품성이나 팬들의 애정이 아닌, 처음부터 정해진 계약서의 만료 날짜에 의해 좌우되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스팀(Steam)과 같은 디지털 플랫폼을 무한한 공간을 가진 '영구적인 도서관'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곳 역시 임대 계약과 비즈니스 논리에 의해 운영되는 '상점의 선반'에 불과합니다.

선반에서 물건이 내려가는 것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존 윅 헥스'의 사례는 이 디지털 선반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불안정하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줍니다.

우리가 구매한 것은 게임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게임이 '선반에 놓여 있는 동안' 접근할 수 있는 권리였을지도 모릅니다.

미래의 도서관을 위한 제언


'존 윅 헥스'의 조용한 퇴장은 앞으로 우리가 계속해서 마주하게 될 수많은 '디지털 소멸'의 서막일 뿐입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한 편의 게임을 아쉬워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디지털 문화를 어떻게 대하고 보존해야 할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급함을 알리는 경고등과 같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IP 소유자와 퍼블리셔는 단기적인 수익을 넘어, 자신들의 창작물이 갖는 문화적 가치와 그 보존에 대한 책임을 더 깊이 고민해야 합니다.

라이선스 만료 후에도 최소한의 접근성을 유지할 수 있는 '저작물 아카이빙' 모델에 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또한 입법 기관은 저작권법이 디지털 시대의 특수성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그리고 '버려진 디지털 저작물(Abandonware)'을 합법적으로 보존하고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장치가 필요한 것은 아닌지 검토해야 합니다.

결국 우리가 만들어가는 디지털 세상이 풍부하고 영속적인 문화의 도서관이 될지, 아니면 일정 기간만 전시되었다 철거되는 임시 박람회장이 될지는 지금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존 윅 헥스'의 묘비명은 바로 그 선택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묵직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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