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그마타 휴(Hugh)는 '크레토스'와 정반대되는 아버지상이다



프라그마타 휴(Hugh)는 '크레토스'와 정반대되는 아버지상이다


'프라그마타(Pragmata)'의 트레일러를 슬쩍 훑어보기만 해도 그 줄거리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인데요.

달을 배경으로 한 캡콤의 이 SF 게임은 폭주한 AI가 지배하는 버려진 달 기지에 고립된 우주비행사 '휴(Hugh)'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사악한 로봇과 그들을 만든 의심스러운 기업이라는 설정은 현대 기술의 부작용을 다루는 전형적인 공상과학 이야기처럼 보이죠.

다소 시대 뒤떨어진 불안감으로 채워진 평범한 SF물 같기도 하지만, 총격전 사이사이에 우리가 곱씹어볼 만한 흥미로운 요소들이 분명히 숨어 있습니다.

프라그마타가 처음 시작될 때만 해도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지겹도록 봐왔던 비슷한 이야기를 보게 될 것이라 예상하게 되는데요.

기지에서 사고가 발생한 후 휴는 어린 소녀처럼 보이고 행동하는 금발 머리 안드로이드 '다이애나(Diana)'와 마주칩니다.

다이애나는 다가오는 로봇들에 맞서 휴를 돕겠다고 고집을 피우지만 휴는 그녀를 쫓아버리려 하거든요.

이는 전형적인 '마지못해 맺어진 파트너십'의 시작처럼 보입니다.

거친 남자 휴가 이 성가신 꼬맹이와 짝을 이루고, 끊임없는 긴장 속에서 서서히 그녀의 대리 아버지가 되어가는 과정 말이죠.

게임 초반부에는 고통받는 남성과 그들의 애정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아이들 사이의 깔끄러운 관계를 다룬 '더 라스트 오브 어스(The Last of Us)' 같은 게임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갑니다.





하지만 휴의 '내키지 않는 부모 노릇' 서사는 거의 시작과 동시에 끝이 나버리는데요.

다이애나가 로봇 해킹을 도와주자마자 휴의 무뚝뚝한 태도는 돌변합니다.

그는 금세 다이애나에게 따뜻함만을 보여주는 '딸 바보'가 되어버리거든요.

이러한 급격한 태도 변화는 마치 의도된 캐릭터 설정의 반전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만약 '데드 스페이스(Dead Space)'의 아이작 클라크가 알고 보니 그 육중한 아머 아래에 아주 다정한 성격의 소유자였다면 어땠을까요?

이는 '용과 같이 7'의 카스가 이치반을 떠올리게 하는 전복적인 캐릭터 묘사입니다.

차가운 겉모습 속에 황금빛 심장을 숨겼던 영웅 키류 카즈마와 달리, 이치반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진실하고 유쾌한 인물이었죠.

휴는 이치반 같은 강아지 같은 에너지는 없지만, 강아지를 만나는 순간 사르르 녹아내리는 그런 종류의 사람인 셈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다이애나와의 관계, 그리고 보호자로서의 휴의 역할을 기존의 '크레토스(Kratos)' 같은 인물들과는 전혀 다르게 만드는데요.

현대의 '갓 오브 워' 시리즈에서 크레토스는 아들 아트레우스에게 아주 엄격한 '강한 사랑'을 실천합니다.

그는 주로 윽박지르는 명령으로만 대화하고, "미안해하지 말고, 더 잘해라" 같은 가혹한 인생 교훈을 던지거든요.

아트레우스가 자신의 존경을 얻기 전까지는 제대로 된 이름조차 불러주지 않을 정도입니다.

게임 전체를 통해 크레토스가 아들을 사랑한다는 사실은 명확해지지만, 우리는 갈등 위에 세워진 관계를 통해서만 그 사랑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크레토스는 험난한 세상에 대비해 아들을 엄격하게 키워야 한다고 믿고, 아트레우스는 그런 아버지에게 소중한 사람 앞에서 무장을 해제하고 취약함을 드러내는 법을 가르쳐주죠.

휴에게는 그런 내면의 갈등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다이애나를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즐거운 작은 친구로 즉시 받아들여 주거든요.

주변에 로봇이 없을 때 휴는 지구에 대한 다이애나의 호기심 어린 질문들에 인내심을 갖고 대답해 줍니다.

차가운 달 기지에서 그녀가 평범한 어린 시절을 맛볼 수 있도록 3D 프린터로 미끄럼틀이나 그네 같은 선물을 찾아주려 애쓰기도 하죠.

안전 가옥에서 휴식을 취할 때 휴는 다이애나와 반복해서 숨바꼭질을 해줄 수도 있는데, 그는 이에 대해 전혀 불평하지 않습니다.

다이애나와 상호작용한 보상으로 그녀가 휴를 위해 그림을 그려주면, 휴는 총기 업그레이드를 하는 컴퓨터 모듈 옆에 그 그림을 아주 자랑스럽게 붙여놓거든요.

참으로 소중한 순간들입니다.





프라그마타는 우리가 기존 게임들에서 봐왔던 것과는 매우 다른 부성애의 모습을 제시하며, 작은 부분들에서 그 차이가 드러나는데요.

만약 다이애나가 제시간에 해킹을 성공시키지 못해 휴가 로봇에게 얻어맞아 쓰러지면, 그녀는 목소리에 미안함을 담아 사과합니다.

이때 휴는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고 다정하게 말해준 뒤 다시 일어나 전투에 임하거든요.

오우거를 상대로 중요한 화살을 놓친 아트레우스에게 크레토스가 똑같이 반응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이런 작은 순간들은 갈등이 주가 되는 게임에서는 보기 드문, 지지와 격려로 쌓아 올린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물론 이를 두고 "아빠 게임(dad game)"이라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이 든 개발자들이 부성애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투영하여 아이를 보호하는 거대한 영웅이 되는 액션 게임을 만든 결과물이라고 말이죠.

그런 식상한 이야기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대작 게임들은 판타지 세계관 속에서 인간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 가끔 너무 뻔한 장치들만 사용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게다가 모성애에 대한 정교한 서사는 부성애만큼 자주 다뤄지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캡콤의 '바이오하자드 레퀴엠'조차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그림자 아래 놓인 그레이스의 모성애 서사를 다루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분량의 절반을 레온 S. 케네디의 트라우마 극복에 할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프라그마타를 단순히 또 다른 부성애 이야기로만 치부해버리는 것은 이 게임이 지향하는 더 넓은 지점을 놓치는 것인데요.

프라그마타는 '입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스토리 중간에 발생하는 대화에서 다이애나는 휴에게 부모님에 대해 묻습니다.

그때 휴는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밝히거든요.

그는 다이애나에게 물려줄 '부성 콤플렉스'에 시달리지도 않고, 자신이 진정으로 속하지 못했다는 느낌 때문에 고통받지도 않습니다.

휴는 부모님을 사랑하며 그분들이 가르쳐준 인생의 교훈들을 다이애나에게 신나서 들려줍니다.

게임에서 가장 노골적인 순간에 다이애나는 휴가 묘사하는 부모님의 모습이 휴 자신과 많이 닮았다고 말합니다.

그때 휴의 몸에는 자부심이 퍼져나가죠. 마치 부모님이 바랐던 바로 그 사람이 자신이 되었다는 것을 실시간으로 깨닫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다이애나를 대하는 휴의 태도가 단번에 이해가 가기 시작하는데요.

왜 그가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녀를 여정에 동행시켰는지, 왜 친딸처럼 그녀를 보호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명확해집니다.

이는 '더 라스트 오브 어스'의 아이디어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조엘이 딸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한 수단으로 엘리를 입양아처럼 여기는 식의 마음의 짐에서는 자유롭습니다.

엘리는 결코 그 역할을 자처한 적이 없으며, 그 때문에 우리는 그 불안한 관계 속에서 권력 역학을 의심하게 되거든요.

그것은 도덕적으로 복잡하지만 입양 부모의 상황을 가장 따뜻하게 묘사한 것이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반면 휴는 조엘과 대조적으로 다이애나의 발달적 필요를 가장 우선순위에 둡니다.

물론 여기에는 불편한 진실도 하나 숨어 있는데요.

다이애나는 사실 인간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그녀는 아이처럼 보이고 행동하는 안드로이드일 뿐이며, 이는 프라그마타를 의미 있는 양육 이야기로 해석하려는 시도를 꼬이게 만들거든요.

인간의 감정을 흉내 낸다고 해서 다이애나를 인격체로 받아들이는 휴의 모습은 챗봇과 연애를 하는 현대의 모습과 겹쳐 보여 불편함을 주기도 합니다.

설령 그 시점을 제쳐두더라도, 순종적인 로봇이 인간 아이의 완벽한 대역이 될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것은 완벽한 아이란 어른이 원하는 대로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순종적인 조력자라는 인상을 주며, 프라그마타의 경쟁작들이 비판받았던 것과 비슷한 권력 역학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거든요.

이를 투박한 은유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그 금속 껍데기 아래 담긴 양육의 서사는 달콤하고 진실합니다.

대작 게임에서 주인공이 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에 이토록 즉각적으로 열광하는 모습은 보기 드문 일이기 때문인데요.

휴는 보호자의 역할을 받아들이기 위해 억지로 끌려가지도 않았고, 다이애나에게 친절을 베풀기 위해 거창한 개인적 변화를 거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의 즉각적인 초점은 그녀의 호기심을 키워주고, 긍정적인 강화 교육을 실천하며, 부모란 자녀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내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에 맞춰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그런 대우를 받기 위해 굳이 부모의 피를 이어받을 필요는 없다는 사실도 함께 말이죠.

독자들이 갈등보다 지지와 격려가 바탕이 된 이 특별한 부녀 관계에 깊이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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