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에이지: 베일가드 참사, 명가 바이오웨어는 어쩌다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을까요?
한때 서양 RPG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바이오웨어(BioWare) 스튜디오의 최근작, '드래곤 에이지: 더 베일가드(Dragon Age: The Veilguard, 이하 베일가드)'의 실패는 단순한 흥행 부진을 넘어, 한 시대의 종언을 고하는 듯한 씁쓸함을 남기고 있습니다.
10년에 걸친 개발 기간, 수차례의 방향 전환, 그리고 내부의 갈등까지, 블룸버그 기사를 통해 드러난 '베일가드'의 개발 비화는 바이오웨어 몰락의 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데요.
과연 무엇이 이 명망 높은 스튜디오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는지, 그 복잡다단한 내막을 파헤쳐 봅니다.
'선택과 결과'의 부재: 멀티플레이어의 망령이 앗아간 RPG의 핵심
블룸버그 기사에 따르면, '베일가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이오웨어 게임의 핵심 매력이었던 '의미 있는 선택과 결과'의 부재였습니다.
알파 빌드 단계에서부터 내부 테스트 플레이어와 외부 테스터들은 이 점을 지적했지만, 게임의 뿌리가 멀티플레이어 라이브 서비스에 있었던 탓에 근본적인 수정은 어려웠다고 하는데요.
개발팀은 출시를 연기하면서까지 두 도시 중 하나를 구하는 것과 같은 몇몇 주요 선택지를 급하게 추가했지만, 이미 대부분의 요소가 확정된 상태였기에 이러한 선택들이 게임의 흐름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이는 마치 잘 짜인 각본에 억지로 다른 장면을 끼워 넣은 듯한 어색함을 유발하며, 플레이어들에게 과거 바이오웨어 게임에서 느꼈던 '이야기를 직접 만들어간다'는 감각을 제공하지 못했습니다.
시대착오적인 '경박한 농담'과 뒤늦은 수정의 한계
또 다른 치명적인 문제는 게임 전반에 흐르는 '경박한(snarky)' 대화 톤이었습니다.
한때 유행했던 이러한 스타일은 점차 대중문화에서 외면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베일가드'는 (멀티플레이어 게임으로 기획될 당시의) 비전을 고수하며 이러한 톤을 유지했습니다.
결국, 최근 유사한 문제로 혹평을 받았던 '포스포큰(Forspoken)'의 전철을 밟을 것을 우려한 바이오웨어 수뇌부는 뒤늦게 대대적인 대사 수정을 지시했지만, 이는 오히려 톤의 불일치를 야기하며 게임의 몰입도를 더욱 해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커뮤니티에서는 "지금 공개된 대사들이 수정된 버전이라면, 원본은 대체 얼마나 끔찍했을까?"라는 탄식이 나올 정도로, '베일가드'의 대사는 시리즈의 명성에 먹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과거 '드래곤 에이지: 오리진'에서 보여주었던 유머와 진중함의 절묘한 균형은 사라지고, 의미 없는 농담과 현대적인 슬랭만이 난무하는 대사는 많은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습니다.
EA의 변덕과 리더십 부재: 반복되는 개발 방향 전환의 악순환
'베일가드'의 개발 과정은 EA의 변덕스러운 경영 전략과 리더십 부재가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2017년, 당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마이크 레이드로(Mike Laidlaw)는 '드래곤 에이지' 차기작이 싱글 플레이어 게임에서 온라인 라이브 서비스 게임으로 방향을 전환한다는 상부의 결정에 반발하며 스튜디오를 떠났습니다.
이후 '앤썸(Anthem)' 개발 지원 등으로 인해 '드래곤 에이지' 프로젝트는 소규모 팀으로 근근이 명맥을 이어갔고,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이전과는 다른 가볍고 유쾌한 톤의 멀티플레이어 게임을 구상했습니다.
그러나 2020년 12월, 스튜디오 책임자와 프랜차이즈 책임자가 동시에 사임하면서 또다시 전략이 수정되어, '드래곤 에이지'는 다시 싱글 플레이어 게임으로 회귀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러한 급격한 방향 전환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재검토 기간이나 자원 투입 없이 촉박한 일정만이 주어졌다는 점입니다.
개발팀은 1년 반 안에 게임을 완성하라는 압박 속에서 제한적인 스토리와 세계관을 구축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결국 앞서 언급된 '선택과 결과'의 부재, '톤의 불일치'와 같은 문제로 이어졌습니다.
내부 갈등과 마지막 불꽃: 매스 이펙트 팀의 투입, 그리고 남겨진 질문들
2023년, '베일가드' 완성을 위해 '매스 이펙트' 차기작 개발팀이 투입되면서 스튜디오 내부의 갈등은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서로 다른 개발 문화와 자부심을 가진 두 팀의 충돌은 원활한 협업을 저해했고, '매스 이펙트' 팀 주도로 게임의 일부와 피날레가 대대적으로 수정되었지만, 이는 기존 '드래곤 에이지' 팀에게 박탈감을 안겨주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매스 이펙트' 팀이 수정한 피날레 부분이 플레이어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사실인데요.
이는 만약 초기부터 명확한 비전과 충분한 지원이 있었다면 '베일가드'가 다른 결과를 맞이했을 수도 있다는 가정을 가능하게 합니다.
하지만 결국 '베일가드'는 바이오웨어의 세 번째 연속 실패작으로 기록되었고, EA는 스튜디오의 대규모 감원과 조직 개편을 단행했습니다.
현재 소수의 인원만이 남아 '매스 이펙트' 차기작을 개발하고 있지만, 과연 바이오웨어가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거인의 쓸쓸한 퇴장
'드래곤 에이지: 더 베일가드'의 실패는 단순히 한 게임의 흥행 부진을 넘어, 시대의 변화에 둔감했던 거대 게임사의 안일함과 내부 시스템의 붕괴가 빚어낸 예고된 참사였습니다.
라이브 서비스라는 유행에 휩쓸려 RPG 본연의 가치를 잃어버렸고, 잦은 방향 전환과 리더십 부재는 개발 과정을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한때 게이머들에게 깊은 감동과 선택의 즐거움을 선사했던 바이오웨어의 몰락은 많은 이들에게 안타까움을 남기며, 게임 산업 전반에 걸쳐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댓글 쓰기